박선경 연재소설 ‘위선의 시대’ [103] 끔찍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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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경 필진페이지 + 입력 2025-05-14 06:25:00

해고 노동자 김씨가 석유로 자신이 서 있는 주변에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서 있었다. 오정일은 기겁했다. 면담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분신 협박이라니. 김씨는 손에 라이터를 들고 있었다. 그는 주변에서 다가오지 못하도록 라이터에 불을 켰다. 순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한발 물러섰다. 지역신문 기자 두 명이 연신 사진을 찍어댔다.

오정일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원 주변으로 다가가 꼿꼿하게 서서 말했다.“이렇게 해결하지 않아도 될 문제인데 왜 이러십니까?”

“아따, 사장님, 지가 한 달 넘게 밖에서 사장님 얼굴 한 번 볼라꼬 그렇게 애원해도 얼굴 안 비 주더만 인자 가까이서 보게 되는구만이라. 오정일 사장님 원칙주의자라 소문 쫙 나부렀오. 면담해도 복직 안 해 줄 거라고.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지도 없는디요, 우리 식구, 애비가 한달 넘게 월급 못 갔다줘서 지금 배를 쫄쫄 굶고 있당게요. 긍게 나가 여그서 복직도 하고 그간 못 받은 월급도 주겠다는 약속 안 해줘 불면 걍 확 죽을라요. 지 새끼들도 챙기지 모다는 가장이 살면 머다거쏘?”

“그러니까 여기서 이러지 마시고 그 문제는 안으로 들어가서 협의해 봅시다. 그거 이리 주세요”

오정일이 한 발짝 다가가자 김씨가 라이터에 다시 불을 붙였다. 김씨 태도가 이상했다. 멈칫하더니 노조위원장 얼굴을 흘끗 쳐다보았다. 노조위원장 태도는 더욱 이상했다. 근로자 입장이라면 그를 말려야 하는데 직원들 사이에 서서 팔짱만 끼고 있었다. 김씨는 말을 이어 갔다.“아따, 사장님, 여그서 할 말 못 함시로 들어가서 뭔 말을 한다요? 그거시 고로코롬 어려운 얘기요? 복직해 주겠다, 월급도 챙겨 주겠다, 그 말이 그리 어렵소?”

오정일은 김씨가 노조의 사주를 받고 행동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사이 윤 부장이 소화기를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 “김씨, 그러니까 말로 하자고 말로. 이런다고 해결 안 돼. 사장님 인품 겪어 봐서 알잖아. 말로 하면 다 들어주실 거야, 그만 불 이리 내. 이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회사 망해, 여기 있는 직원들 다 일자리 잃어, 왜 그렇게 생각이 없어, 김씨.”

김씨는 윤 부장의 설득에 잠시 동공이 흔들렸다. 그는 다시 노조위원장을 바라봤다. 노조위원장도 김씨가 자꾸 자기를 쳐다보며 말하자 애써 나서는 척했다. “김씨, 속상한 거 다 알아, 나는 사장님께서 김씨 요구 다 들어주실 거라고 믿어. 회사 직원들을 가족같이 생각하는 분이잖아. 우리도 그건 다 알고 있지” 노조위원장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오정일을 쳐다보았다.

“사장님, 기자도 있고 그러니 김씨 요구 들어주겠다고 말씀하시죠.”

노조위원장의 말이 끝나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오정일 사장의 대답이 궁금했다. 오정일은 회사 경영에 있어서 원칙을 벗어난 적이 없는 사람이다. 노조를 허락할 때도 사측에서 도울 수 있는 건 돕겠다 하고, 원칙과 질서를 깨는 구성원, 조직에 위해가 되는 사람은 가차 없이 배제하겠다며 이를 지켜왔다.

[글 박선경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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