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31º
습도 55%
수원 32º
습도 55%
여수 31º
습도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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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고통스러운 것일까? 무엇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일까?’
하운은 온종일 자신에게 물었다. 그녀는 대답할 수 없었다.
며칠 뒤 밤늦게 침실 문이 열리고 동우가 들어왔다. 술 냄새가 훅 끼쳤다. 침실에 들어선 동우는 말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하운은 세상 모르고 잠이 든 것처럼 고른 숨을 내쉬려고 노력했다. 동우가 선 채로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내려다보았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동우의 시선과 호흡을 통해 그가 어떤 표정을 짓는지도 훤히 느낄 수 있었다.
동우가 침대 끝에 앉았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쓸어 올려 주었다. 그 손길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일지도 몰랐다. 꿈인 것도 같았다. 그녀가 눈을 떴다. 동우가 가슴 안쪽으로 힘껏 그녀를 끌어당겨 안았다.
“싫어!”
완강하게 동우를 밀어냈다. 화해든 사과든, 섹스가 먼저일 수는 없었다. 하지만 거부하는 하운의 몸짓이 동우를 자극한 것 같았다. 한 손으로 그녀의 두 팔을 잡아 머리 위로 올리고 다른 손으로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하운은 물 밖으로 끌려 나온 생선처럼 파닥거리다가 눈을 감았다.
동우가 그녀의 잠옷을 걷어 올리고, 속옷을 끌어 내렸다. 마침내 조용해진 그녀의 몸 안으로 동우가 들어왔다. 그의 몸이 그녀 안에서 움직였다. 동우의 숨결이 차츰 쫓기는 사내처럼 성급하고 거칠어졌다. 하운은 흔들렸다. 눈앞에 우미숙의 얼굴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동우의 바지 지퍼와 벨트가 맨살을 스칠 때마다 쓰리고 아팠다. 그래도 하운은 아주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눈을 떴을 때, 아직 그녀 안에 있는 동우가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물었다.
“나한테 원하는 게 이거니?”
암컷을 만족시킨 사내의 우월감을 넘어 동우의 눈꼬리에 조소가 걸렸다. 동우의 등을 감고 있던 하운의 손이 힘없이 풀렸다. 동우가 빠져나갔다. 몸을 일으킨 동우가 바지 지퍼를 올리고 벨트를 맸다. 힘껏 문을 닫고 방을 나갔다. 하운의 심장이 문틈에 끼어 산산이 부서져 버린 것 같았다. 하운은 자신을, 동우를 받아들인 그녀의 몸뚱이를 갈기갈기 찢어발기고 싶었다.
손에 움켜쥔 오렌지색 넥타이가 거실 바닥에 길게 끌렸다. 닫힌 문틈으로 동우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은 무덤처럼 어두웠다. 번개가 칠 때마다 잠깐씩 사물들이 형체를 드러냈다가 사라졌다.
동우가 멀쩡하게 살아 돌아온 날 이후 하운은 셀 수 없이 많은 살인을 저질렀다. 범행 대상은 언제나 동우였다. 가속 페달을 힘주어 밟고 남편을 향해 돌진하거나 천 길 낭떠러지로 밀어 떨어뜨렸다. 남편이 마실 커피에 청산가리를 넣었고, 그가 목욕하고 있을 때 작동 중인 헤어드라이어를 욕조에 빠뜨리기도 했다. 남편의 몸을 타고 앉아 목을 힘껏 조르기도 했으며 몸부림이 잦아들 때까지 쿠션으로 질식시키기도 했다. 앞서가는 남편의 뒤통수를 야구 방망이로 가격했고 무릎 꿇은 남편의 관자놀이에 방아쇠를 당겼다. 남편의 배에 칼을 꽂기도 했는데 차갑고 새빨간 피가 온통 그녀의 몸을 물들였다.
[글 김규나 일러스트 임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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