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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정치와 법이 동시에 길을 잃고 있다.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대법원이 유죄 취지의 판단을 내린 야당 대표는 여전히 차기 대통령 후보로 유력하다. 그런데 재판은 멈췄다. 공판 기일은 대선 이후로 미뤄졌다. 법은 더 이상 제때 판단하지 않았고, 정치권은 오히려 이를 방패 삼았다. 정치가 먼저 윤리를 버렸고, 그 순간 법도 정의를 놓아버렸다. 국민만이 이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 했던 두 발언, “김문기 처장을 모른다”와 “백현동 인허가는 국토부의 압력 때문”으로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은 유죄였고, 2심은 무죄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달랐다. “모른다”는 발언은 명백한 허위였고, “국토부의 압력” 역시 객관적 근거 없이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허위사실이었다며 유죄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는 사실상 유죄 확정에 가까운 판단이다.
그런데 그 이후의 흐름은 상식과 어긋난다. 사건을 다시 심리해야 할 고등법원은 공판 일정을 대선 이후로 미뤘다. 이 결정이 민주당의 압력 때문인지, 정치적 고려에 따른 자발적 판단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보면, 법원이 선거라는 정치 일정을 앞두고 판단을 유예한 것이다. 유죄 가능성이 높다고 본 사건조차 판단을 유보한다면, 법은 더 이상 정의의 기준이 아니다. 법이 정치의 보조물이 된 것이다.
정당의 태도는 더 심각하다. 민주당은 대법원 판단 이후에도 이 대표를 중심으로 '사법 탄압' 프레임을 유지하고 있다. 일부 인사는 아예 '윤석열 정권의 정치검찰'이라는 주장을 반복하며 사법부 자체를 불신하는 분위기를 조장한다. 이는 사법체계 전반에 대한 불신을 유도하는 것이며, 사실상 법치주의의 기반을 흔드는 행위다.
대법원이 허위사실 유포라고 판단한 사람을 대선 주자로 내세우는 정당, 그 공판을 선거 이후로 미뤄주는 법원,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방조하거나 무관심하게 지켜보는 국민. 지금 이 세 축이 만들어 낸 현실은 매우 위험하다. 법과 윤리가 각각의 영역에서 무너지고 있는 동시에, 이를 제어할 책임을 가진 시민사회 역시 침묵하고 있다.
선거는 유권자가 정치의 윤리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당이 ‘이기는 선거’만을 바라보며 윤리적 기준을 철저히 무시하고, 법원까지 판단을 유예하는 구조에서는 유권자의 선택 자체가 왜곡될 수밖에 없다. 공정한 판단을 내려야 할 시점에 침묵을 선택한 사법부, 자정 능력을 포기한 정당, 그리고 체념한 유권자가 만든 공백. 이 공간에서 가장 먼저 사라지는 것은 ‘정의’다.
정치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말하지만, 국민은 ‘상식추정’의 원칙으로 판단한다. 대법원이 유죄 취지로 판단한 사안, 그 내용을 은폐하거나 회피하려는 정치인, 공판을 미루는 법원의 선택은 상식에 반한다. 이 대표 개인의 법적 운명이 문제가 아니다. 정치의 도덕적 기준이 사라진 지금, 법마저 정치의 하위 질서로 전락한다면 우리는 어디서 정의를 기대해야 하는가.
정치는 권력을 통해 국민의 삶을 바꾼다. 하지만 윤리를 버린 정치가 쥔 권력은 오히려 국민의 삶을 파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법은 원래 그 권력을 견제하고 조율하는 최후의 장치다. 그런데 그 법이 정치의 부담을 덜어주는 ‘스케줄러’처럼 움직일 때, ‘정의’는 자취를 감춘다. 지금 법은 ‘정의로운 판단’을 미룬 것이 아니라, ‘정의’ 그 자체를 내려놓은 것이다.
이재명 대표가 유죄냐 무죄냐를 떠나, 이 사안을 둘러싼 사법과 정치의 태도는 명확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기준으로 지도자를 선택할 것인가. 정치가 윤리를 버린 순간, 법이 정의를 내려놓았고, 그 모든 결과는 국민이 감당해야 할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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