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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가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 법과정의당(PiS)에 패배하자 2일(현지시간) 총리 신임투표 발의 의사를 밝혔다. 친유럽연합(EU) 글로벌리즘과 자국중심주의의 대결이었던 이번 폴란드 대선은 후자의 승리로 끝났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최종 결과 발표 후 투스크총리는 TV연설에서 “대선 결과가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면서도 의회 신임을 얻어 친유럽 정책을 계속 추진할 뜻을 내비쳤다. 새 대통령과의 대립 역시 불가피하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현지 매체 TVP도 카롤 나브로츠키(42) 당선인이 장차 현 연립정부 붕괴 및 조기 총선으로 몰아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투스크총리에겐 자신에 대한 신임투표를 스스로 제안해 정국 주도권 회복의 승부수를 던지며 여러 정치세력이 뒤섞인 연정의 분열 가능성을 잠재우려는 목적이 있다고 분석했다.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집정부제의 폴란드에선 행정수반이 총리다. 대통령은 외교·국방(군통수권)을 주도하며 법률거부권·비상계엄권 등을 행사한다.
전날 진행된 결선 투표 결과 나브로츠키는 50.89％를 득표해 투스크총리가 속한 KO 등으로 구성된 시민플랫폼(PO)의 라파우 트샤스코프스키(53)를 꺾었다. 친EU 집권 여당 PO의 트샤스코프스키는 49.11%를 얻었다. EU와 관계 개선을 추구해 온 여당과, 폴란드의 국익을 우선시한 우파 PiS의 맞대결 양상이었다. 13명이 출마한 지난달 1차 투표 때 과반 득표 후보가 없어 1·2위 트샤스코프스키(31.36％)와 나브로츠키(29.54％)의 결선이 1일 치러진 것이다.
나브로츠키는 더 강성 우파인 스와보미르 멘트젠(14.81％)과 그제고시 브라운(6.34％)의 표를 흡수해 결선에서 역전을 이뤘다. 이번 폴란드 대선 결과에 대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유럽 국가의 양극화를 명확히 보여준다고 AFP가 짚었다. 또 그간 투스크정부의 친EU ‘진보적’ 정책이 대부분 중단될 것이며 EU와 폴란드의 관계도 껄끄러워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2023년 총선에서 KO 등 중도·좌파 세력에 정권을 내준 PiS는 이번 대선에서 무소속 나브로츠키를 내세워 대통령직 수호에 성공했다. 보수 역사학자 출신인 나브로츠키는 정치 신인이다. 폴란드 헌법이 EU법에 우선한다며 유럽난민협정 탈퇴를 주장해 왔다. 또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과 적극 협력해 안보불안 문제를 해소하겠다는 등 반유럽·친트럼프 정책을 내걸었으며 이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투스크 TV연설에 앞서 PiS의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대표가 유권자들이 현 정부에 ‘레드카드’를 내밀었다면서 내각을 해산하고 모든 정당과 협의해 무정파적 기술관료 정부를 구성하라는 요구를 내놨다. 2015년 당선돼 연임한 후 8월 퇴임할 안제이 두다 현 대통령도 PiS 측 인사다. KO 주도의 연정은 의석수가 대통령의 법안거부권 행사 무효화에 필요한 의회 재적 3분의2에 못 미쳐 총선 때 약속한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 나브로츠키는 “우리 애국진영이 불법이민 없는 정상적인 안전한 폴란드를 원하는 모든 사람을 단결시켰다. 투스크정부의 권력 독점을 허용하지 않겠다”며 목소리 높였다. 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네오나치) 세력의 폴란드인 학살 등 과거사 해결 없이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도 없다고 주장한다. 나브로츠키는 나치 독일의 침공에 대한 배상 문제가 미결 상태임을 강조하며 PiS에선 EU를 옛 소련 집단농장 ‘콜호스’에 빗대곤 한다.
TVP는 “투스크정부의 자유주의적 사회정책이나 사법개혁안 통과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며 “정치적 마비 상태 지속”을 전망했다. 투스크 총리와 두다 대통령이 그랬듯 조만간 나브로츠키 신임 대통령과의 충돌도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자유주의적 정책·개혁안’이란 DEI(다양·평등·포용)을 내세운 정치적올바름주의에 충실한 것들이다. PiS 측 인물인 두다 대통령은 법안거부권을 무기로 사법·언론 개혁과 낙태권 확대 등 투스크 내각의 핵심 정책을 저지해 왔다.
폴란드 현행 헌법 제18조엔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이라고 명시돼 있다. 동성결혼이 허용되지 않으며 동성커플에 대한 법적 인정(시민결합 등) 또한 아직 공식 시행되고 있지 않다. 작년 10월 투스크정부가 동성커플의 시민결합을 위한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으나 계류 중이다. 폴란드의 이런 상황을 2023년과 2025년 유럽인권재판소(ECHR)에선 인권침해로 판결하고 법적 보호 체계 마련을 요구한 바 있다. EU식 이른바 자유주의 내지 진보적 개혁이란 이렇게 기독교국가적 본질과 부딪히는 것들이 많다.
나브로츠키는 지난달 초 폴란드 대선 후보로서 미 백악관 ‘국가기도의 날’ 행사를 찾아 트럼프와 함께 사진을 찍고 이를 선거전에 대대적으로 활용했다. 1952년 미 의회 결의로 국가기도의 날(매년 5월 첫 목요일)이 출발했다. 국가적 출발과 지향점을 기독교적 가치에 둔다는 천명이기도 하다. 대통령을 비롯한 미 고위층과 해외 귀빈들이 초대돼 함께 기도·연설·찬송·묵상한다. 여기서 보수 기독교의 국제 네트워킹도 이뤄진다. (무슬림)난민·성소수자 보호를 내세운 글로벌리즘보다 가정·교회·국가 가치관을 통해 자국중심주의를 추구한다는 게 나브로츠키와 트럼프의 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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