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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출범 100일을 맞아 외교·안보 분야 성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체적인 평가는 긍정적이다. 임기 초 최대 난제였던 대미 관세 협상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무리 없이 치러내면서 “첫발은 무난했다”는 분석이 많다.
8일 외교안보가에 따르면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는 최근 정부 정책브리핑과의 인터뷰에서 정부 실용외교 기조 관련 “준비된 외교, 원칙과 국익의 조화, 지도자의 담대함이 조화를 이룬 정상외교”라며 “스마트 외교의 정석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강대국 외교, 지역 외교, 양자 외교 모두에서 의미 있는 출발”이라고 호평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시험대는 이제부터라는 지적이 잇따른다. 3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장면은 국제사회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북·중·러 정상이 66년 만에 나란히 선 이 장면은 곧장 ‘반미 연대’의 상징으로 해석됐고, 한미일 대 북중러의 신냉전 구도가 현실화하고 있다는 우려로 이어졌다. 한국 외교는 안보와 경제, 동맹과 자율성 사이에서 갈림길에 서 있는 셈이다.
이지수 명지대 교수는 본지와 통화에서 “북한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보는 건 과장”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중국 내부 권력 구도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단순한 의전 연출에 불과할 수도 있다”며 “북한이 국제적 위상을 실질적으로 높였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북한의 군사 협력에 대해서도 “북한 파병은 전세를 바꿀 힘이 없고, 러시아 입장에서는 값싼 소모품이 될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첨단 군사기술 제공 가능성도 불확실하다”며 “북·러 관계는 상호 불신을 전제로 한 거래적 성격이 강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과의 협상 역시 불확실성이 짙다는 경고가 나온다. 합의문 부재와 구체적 협력안 미비는 아쉬운 대목으로 지적됐다.
한 외교소식통은 “큰 사고 없이 정상회담을 마친 것 자체는 성과지만, 지금의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 일인 체제에 가까워 관료 발언을 곧바로 미국 정책으로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방위비 분담, 주한미군 재배치 등 민감한 의제가 빠졌지만, 실무 협상 단계에서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송승종 대전대 군사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상회담은 큰 실수 없이 치렀지만 손에 잡히는 성과는 부족했다”며 “문서화·제도화가 이뤄지지 않아 후속 조치 가능성도 불투명하다. 백악관에서 망신만 면한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주한미군의 성격에 대해서도 송 교수는 “주한미군은 한국의 것이 아니라 미국의 자산”이라며 “미국의 전략적 필요에 따라 움직일 뿐, 한국의 기대와 다를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9·19 군사합의 복원, 대북 확성기 중단, 연합훈련 축소 등은 위험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평화가 안보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안보가 평화를 가져온다”며 “유화책은 북한 위협을 도외시한 방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정부가 제시한 ‘3단계 비핵화’ 구상에 대해서도 비판이 거셌다. 송 교수는 “북·중·러 정상회담과 시진핑–김정은 회담에서조차 비핵화 언급은 사라졌다”며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기정사실화하려 하고 있어 국제적 호응을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같은 맥락에서 익명을 요구한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본지에 “이 정부 대북 접근은 너무 급진적이고 사실상 짝사랑에 가깝다”고 혹평했다. 그는 “북한은 아예 생각도 없는데 한국이 스스로 무장 해제를 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연합연습 분산 같은 조치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한미일협력 안보 전문가인 신치범 건양대 교수는 출범 100일 외교의 성과로 ‘예측 가능성의 회복’을 꼽았다. 그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정권 교체 때마다 한일 관계가 흔들리면서 국민과 일본 모두 불안감을 느꼈지만, 이번 정부 들어 정권 성향과 무관하게 한일 관계를 중요시한다는 신뢰가 회복됐다”고 말했다.
또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해 한미일 삼각 안보 협력의 지속 가능성을 명확히 한 점도 의미가 크다”며 “이념 노선을 떠나 실용 외교 차원에서 삼각 협력의 중요성을 확인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반도 정세 안정화를 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셔틀 외교 재개와 과거사 합의 존중 의사 표명은 정부 간 신뢰를 공고히 하며 한일 관계의 토대를 다시 다지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다만, 향후 한미일 협력 구도와 관련해 “긍정과 부정의 양면이 있다”며 “한국의 입장이 고려되지 않고 효율성만 강조된다면 협력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 교수는 특히 주한미군사령부의 ‘전구(戰區) 구상’과 전략적 유연성 확대 문제를 지적하며 “큰 틀에서는 한미 안보 협력을 강화할 수 있지만, 한국 안보의 공백이나 자율적 선택권 제약으로 이어질 경우 부정적 효과가 더 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정국의 유동성도 변수로 꼽으며 “이시바 총리 사임 가능성과 과거사 문제의 미봉은 여전히 리스크”라고 진단했다.
문정인 교수도 가중하는 신냉전 구도 속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전략적 균형감각에 주목했다. 그는 “이 대통령은 한미일 3국 관계를 돈독히 하는 동시에 한중일 삼각관계도 잘 관리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며 “한미일과 한중일이라는 중층적 삼각 구도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은 국익에 기초한 실용외교의 방향과 맞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틀 속에서 한미일 협력 강화에 치중했다면, 이재명 정부는 보다 균형적이고 실용적인 접근을 추구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는 또 이번 정상외교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으로 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당신이 피스메이커(peace maker)라면 나는 페이스메이커(pace maker)가 되겠다”고 제안한 순간을 꼽았다. “상대의 환심을 사는 동시에 한반도 평화 의제를 선점한 절묘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오는 10월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이재명 정부 외교의 다음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만남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이 대통령이 배제되는 방식으로 성사될 경우 오히려 외교적 타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외교 전문가는 본지에 “트럼프, 시진핑, 푸틴, 일본 신임 총리를 모두 불러내 큰 판을 만들어야 한다”며 “민주주의 회복 이후 한국이 주도적이고 실용적인 외교 구상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외교적 주도권은 흔들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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