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이 코너킥을 찼다. 공만 보고 달리던 이재성은 머리부터 내밀었다. 가까스로 다이빙 헤딩슛했지만 공은 아쉽게도 골키퍼 손에 걸렸다. 축구공이 골문 앞에 떨어질 때 야구 선수가 헤드퍼스트 슬라이딩하듯 쏜살처럼 미끄러지던 이재성은 다시 한번 헤딩했다. 공을 향해 머리를 왼쪽으로 돌렸지만 닿지 않았고 골대에 머리부터 부딪쳤다. 뇌진탕이 걱정되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공격수와 골키퍼가 모두 위험했다. 골을 넣겠다는 의지로 몸을 날린 이재성은 머리를 크게 다칠 상황이었다. 볼리비아 골키퍼 기예르모 비스카라도 실점할 수 있던 위기에 빠졌다. 아찔했던 순간에 골키퍼는 공을 쳐 내려고 뻗었던 오른손으로 이재성 머리를 밀쳤다. 덕분에 이재성은 골대와 살짝 부딪쳤을 뿐 다치지 않았다. 한국과 볼리비아의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14일)은 손흥민 활약보다 골키퍼 선행이 화제를 모았다.
적을 죽여야 하는 전쟁터에서도 인류애가 보인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던 1943년 12월20일 독일 브레멘 상공. 찰리 브라운이 조종했던 미국 폭격기 B-17은 독일군 대공포에 맞아서 추락하기 직전이었다. 독일 공군은 루드비히 스티글러에게 B-17 격추를 명령했다. 그러나 웬걸, 스티글러가 조종한 독일 전투기 Bf109는 B-17를 격추시키기는커녕 호위했다. 잔뜩 겁을 먹었던 브라운을 살려서 보낸 스티글러는 훗날 전투능력이 없는 상대를 공격하는 건 기사도 정신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꼭 죽여야 하는 순간에 적을 살려주는 마음은 왜 어떻게 생기는 걸까?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설명했다. 우물에 빠질뻔한 아이를 보면 불쌍히 여겨서 돕고자 하는 마음이 생긴다. 볼리비아 골키퍼는 머리를 골대에 찧을 뻔한 이재성을 보면서, 독일 전투기 조종사는 추락하기 직전에 겁먹은 적군을 보면서 차마 모른척하지 못했다. 이런 마음을 가리켜 맹자는 인(仁)이라고 불렀다. 불교 자비(慈悲)와 힌두교 카루나(karuna), 기독교 아가페(agape)와 이슬람 라흐마(rahma)도 비슷하다. 선악의 기원을 연구한 폴 블룸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는 한 살배기 아이도 착한 사람에게 끌리고 못된 사람에게 반발한다고 설명했다. 어진 마음에는 목적과 대가가 없는 인간 본성이란 뜻이다.
마음이 아닌 유전자에 초점을 맞춰보자. “우리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기계일 뿐이다.”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란 책에서 모든 생명체가 유전자를 퍼트리기 위해 존재한다고 가정했다. 그렇다면 이기적인 유전자를 가진 사람의 이타적인 행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도킨스는 기발한 발상으로 스포츠맨십과 인류애를 헤아렸다. 이기적인 유전자는 이타적인 행위를 통해서 자연선택을 받아서 생존하고 번식한다. 혈연선택 이론은 자식을 위해 목숨까지 버리는 부모를 유전자 복제로 해석하고 배려와 자비는 남을 도우면 언젠가 내가 도움을 받는다는 결과를 낳는다. 도킨스 머릿속에서 인류 유전자란 이렇다. 남을 살려야 결국 나도 산다.
수학자는 죄수 딜레마라는 게임이론을 만들었다. 미국 국방성은 1950년 협력과 갈등에 관한 실험에서 서로 협력해야 이롭지만 믿지 못해서 배신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미국 프린스턴대 수학자 앨버트 터커는 1992년 죄를 인정해야 할지 말지를 협상하는 두 죄수를 설명하면서 죄수 딜레마라고 불렀다. 골키퍼와 조종사처럼 착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침마다 읽는 신문과 저녁마다 보는 TV에는 살인, 강도, 음주운전 등이 끊이질 않는다. 누구나 탐욕을 가진 만큼 이타적인 사람보다 이기적인 사람이 많은 건 당연하다.
인류가 폭력과 전쟁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뭘까? 협력과 응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학자 로버트 엑설로드는 1980년 죄수 딜레마를 연구하려고 의사결정 대회를 열었고 일단 협력하되 상대가 배반하면 응징하는 전략(tit for tat)이 최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류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이타적 행동으로 번성했고 우리는 착한 마음을 중시했던 조상의 후예인 셈이다. 엑설로드가 발견한 의사결정을 성공으로 이끈 전략은 이렇다. 첫째 먼저 협력하라. 둘째 상대가 배신하면 응징하라. 셋째 응징한 다음에 용서하고 다시 협력한다. 넷째 상대가 오해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행동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비협력만 고집한다. 정부 여당과는 절대 협력하지 않는다. 심지어 12․3 불법계엄에 대해서도 반성하지 않았다. 장동혁 대표는 최근 “우리가 황교안이다”면서 “뭉쳐서 싸우자”고 말했다. 탄핵을 당한 윤석열과 부정선거를 외치는 황교안과 협력하겠다는 뜻이다. 신뢰가 중요한 정치에서 일관된 비협력 전략은 비합리적이다. 극우세력을 등에 업고 당권을 유지하겠지만 국민에게서 불신을 받아서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 소탐대실을 고집하면 응징을 당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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