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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웅의 학창시절 비행 논란이 불거진 이후, 온라인은 순식간에 거대한 단죄의 장으로 변했다. 배우 한 사람의 과거를 둘러싼 공방은 정치적 프레임과 결합하며 사건의 본래 크기보다 비정상적으로 팽창했다. 사실 확인은 뒷전으로 밀렸고, 오직 ‘분노의 방향’만이 여론을 규정하는 구조가 재연된 셈이다.
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국 사회는 이미 여러 차례 연예인을 마녀사냥의 제단 위에 올려두었다. 그 비극의 계보는 오래전부터 경고 신호를 보내왔으나, 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구하라와 설리의 죽음, 사실관계가 규명되기도 전에 몰아친 여론 속에서 삶을 마감한 이선균, 그리고 김새롬을 비롯해 빚투·학폭·루머로 활동이 봉쇄되고 인생 전체가 흔들린 이들은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온라인 폭력과 즉결 심판 구조가 낳은 누적된 결과임을 보여준다.
예술가가 아니라 ‘재물’이 되는 순간
배우 박정훈은 이번 사태를 두고 연예인의 생존 구조가 얼마나 가혹한지 토로했다. 그의 말은 담담했지만, 업계를 지배하는 공포가 묵직하게 배어 있었다. “나는 배우로 살아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의 현재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이미지와 과거의 흔적을 함께 본다. 연예인은 ‘남는다’고 하지만, 그 말은 상처조차 지워지지 않는다는 뜻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는 연예계에 만연한 ‘색깔 씌우기’ 문제를 지적했다. 박정훈은“누구든 정치적 딱지를 붙일 수 있다. 종북, 친여, 친야… 예술의 결보다 정치적 프레임이 먼저 얼굴을 규정한다. 공인은 비판받는 존재지만, 지금의 구조는 비판이 아니라 선고에 가깝다”고 토로했다.
또 과거의 과오가 필요할 때마다 호출되는 현실을 우려했다. “어린 시절 이미 대가를 치른 과오가 다시 소환된다. 어떤 때는 가족까지 끌려 나온다. 사회가 안심할 희생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 고백했다.
조진웅 사태가 그에게 유독 민감하게 다가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선배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 그 정서를 연기에 담아온 분인데, 지금은 그 정서가 ‘죄’로 호출되고 있다. 누군가의 목적에 따라 열렸다 닫히는 캐비닛 문서처럼 취급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10년간 반복된 비극이 드러낸 구조적 문제
지난 10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는 온라인 혐오, 성적 비난, 마녀사냥식 여론몰이가 반복적으로 개인을 파괴하는 참사가 이어졌다. 연예인을 중심으로 벌어진 비극들은 디지털 시대의 구조적 문제가 어디까지 깊어졌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 가수 설리(최진리)의 극단적 선택은 온라인 폭력의 심각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설리는 데뷔 이후 지속된 익명 악플과 성적 비난, 인신공격에 시달려 왔으며, 사건 이후 ‘악플 근절’ 요구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됐다. 같은 해 세상을 떠난 가수 구하라 역시 비슷한 유형의 온라인 공격 피해를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져, 여성 연예인을 둘러싼 디지털 폭력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2023년 배우 이선균의 사망은 사실관계가 충분히 검증되기도 전에 쏟아진 의혹 보도와 여론의 마녀사냥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었다. 사생활 유출과 추정 보도가 뒤엉킨 혼란 속에서 그는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렸다.
올해 2월 방송인 김새롬은 SNS를 중심으로 퍼진 악성 루머와 왜곡된 발언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대중적 조롱의 대상이 됐다. 사실과 다른 짜깁기 정보가 반복 유통되며 개인의 명예와 인격이 훼손되는 과정은,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어떻게 일상을 파괴하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줬다는 평가다.
빚투·학폭 의혹, 전 연인 폭로 등의 프레임에 휘말린 많은 이들 역시 검증되지 않은 주장 하나로 활동이 차단됐고, 혐의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난 뒤에도 삶을 되돌리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이 구조가 만들어낸 희생의 이름들이다.
기획사 관계자 A씨는 이번 사태를 두고 “사실 확인 없는 낙인이 아티스트의 생존을 파괴한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에서 퍼지는 내용 상당수는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다. 이미 마녀사냥이 시작되면서 아티스트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희생양 만들기’ 구조가 엔터 업계를 반복적으로 집어삼키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가 분노를 해소할 대상을 찾을 때 연예인은 가장 쉬운 표적이 된다. 이 구조를 멈추지 않으면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한국의 마녀사냥 문화가 연 18조 원 규모 K-POP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적 시장으로 성장하면서 아이돌은 더욱 철저히 ‘상품’으로 관리되고 있으며, 외모·체형·피부·사생활·가족사까지 모두 브랜드 리스크로 분류된다. 연습생 한 명을 데뷔시키는 데 수십억 원이 투입되는 구조 속에서, 이들은 24시간 이미지 유지 노동에 놓여 있다.
문제는 법과 제도가 이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연습생은 학생도, 노동자도, 아동노동자도 아닌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으며, 그 결과 △미성년자 새벽 연습 △하루 10시간이 넘는 노동 △생리 중단과 체중 강박 △학습권 침해 등 기본권 침해가 반복된다.
해외 시장 확대와 함께 데뷔 연령은 더 낮아지고 있다. 기획사들은 “어릴수록 잘 팔린다”는 논리를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는 “어릴수록 통제하기 쉽다”는 산업의 잔혹성이 숨어 있다. 감정 억압, 사생활 제한, 개인성 삭제 등 아이돌의 어린 시절은 수익 논리에 갇혀 지워지고 있다.
K-POP의 화려함 뒤에는, 인간이 아닌 ‘이미지’로 소비되는 아이돌의 현실이 놓여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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