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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을 바라보는 시선은 급성장한 ‘유통의 공룡 플랫폼’이라는 표현에 머물러 있었다. 거대하고, 빠르고, 시장을 압도하는 기업으로 해석됐고 성장의 속도와 규모를 설명하기에는 이보다 직관적인 단어도 없었다.
물류·배송 노동자의 사망 사고는 반복돼 왔으나 초기 급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부작용 즉 성장통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의 사태를 따라가다 보면 이 표현이 과연 적절했는지 의문이 든다. 지금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단순히 몸집이 큰 공룡이 아니라, 제어되지 않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올해만 쿠팡 관련 노동자 8명이 사망하며 단순한 성장통이 아닌 구조적 위험이었음이 명확해지고 있다.
또한 3370만 명에 달하는 개인정보 유출은 단순한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로 치부하기 어렵다. 이는 한국 사회의 생활데이터가 사실상 통째로 노출된 사건에 가깝다. 피싱이나 스미싱은 코 앞에 닥친 현실적인 위험이고, 한국 성인의 70%가 넘는 인구의 실명·주소·전화번호·이메일·주문 정보가 다른 정보들과 결합될 경우 어떤 파장으로 이어질지는 가늠조차 힘들다.
반면 반복되는 물류·배송 노동자의 사망, 개인정보 유출 관련 경찰의 압수수색과 국회 청문회, 그리고 국정조사 추진까지 이 일련의 과정에서 쿠팡은 꿈쩍하지 않는 행보다.
문제는 이 거대한 위험 앞에서도 쿠팡의 태도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쿠팡이 사고를 대하는 프레임은 여전히 기업 리스크 관리 수준에 머물러 있다.
쿠팡은 법적으로는 민간기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미 생활 인프라의 영역에 들어와 있다. 2025년 3분기 기준 활성 고객 수는 2470만 명에 달하고, 택배 물동량에서도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는 단순히 물건을 파는 유통기업을 넘어, 국민의 소비 패턴과 생활 리듬을 재편하는 수준이다. 기업이 이 정도의 영향력을 갖게 됐다면, 책임의 기준 역시 달라져야 한다.
물류센터와 배송 현장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여전히 개인의 건강 문제나 개별 사고로 치부되고, 개인정보 유출은 사후 수습과 법률 대응의 문제로 축소된다. 위험을 개인과 사회로 치환시키는 구조다.
지난주 박대준 한국법인 대표이사 사임과 미국 모회사 쿠팡 Inc.의 최고관리책임자(CAO) 겸 법무총괄인 해롤드 로저스가 쿠팡의 임시 대표로 선임된 것은 쇄신이라기보다 위기관리 체제로의 전환으로 읽힌다.
더 상징적인 장면은 국회 청문회와 국정조사로 이어진 국면에서도 실질적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김범석 의장이 여전히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책임의 정점이 보이지 않는 구조는 기업의 몸집이 커질수록 더 큰 위험을 낳는다. 글로벌 플랫폼이라는 외피 뒤에서 책임이 분산되고, 국내 사회가 감당해야 할 위험만 누적되는 방식이다.
이러한 구도는 통제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낳는다. 지금 쿠팡을 둘러싼 논란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누가 결정하고, 그 결정의 결과를 누가 책임지는지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적 영향력만 비대해졌다.
이는 특정 기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성장 모델과 어떤 플랫폼을 허용해 왔는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번 국회가 추진하는 국정조사는 이러한 관점에서 중요성이 커졌다. 단순히 해킹 경로나 관리 부실을 따지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생활데이터와 노동, 유통 인프라를 동시에 쥔 기업을 어떤 기준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번 사태 역시 시간이 지나 또 하나의 사건으로 소모될 뿐이다.
로켓배송에 익숙해진 소비자와 새벽배송 노동자를 쿠팡이 스스로 보호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국회 청문회와 예고된 국정조사는 단순히 쿠팡의 위법 여부를 따지는 절차 이상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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