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건설이 시공하고 송파구 아파트 가운데 처음으로 스카이브릿지가 적용된 1,865가구 규모의 대단지 잠실 르엘(미성·크로바 재건축)이 지난달 20일부터 입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설계 변경을 둘러싼 이른바 ‘A/B 도면’ 논란을 두고 잠실미성·크로바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 조합원들과 조합 및 시공사 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일부 조합원은 “계약 및 총회 당시 제시된 내용과 실제 시공 결과가 다르다”고 주장하는 반면, 조합과 시공사 측은 “모든 공사는 인허가를 받은 도서 기준에 따라 이뤄졌으며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반박한다. 본지는 논란이 제기된 잠실 르엘 단지를 직접 찾아 A도면상 아일랜드 후드 관련 사항을 중심으로 현장 상황을 점검했다.
10일 오후 본지는 조합원 배정 물량인 전용 84C형(355가구)과 95형(100가구) 세대를 직접 확인했다. 해당 타입은 기존 ‘ㄷ’자형 주방 구조가 ‘11’자형으로 바뀌고, 벽면에 설치될 예정이던 후드가 거실 쪽 중앙부로 이동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제기된 곳이다. 현재 논란은 △도면 변경의 절차적 적법성 △정보 공개 수준 △자재 성능 △하자 원인 △조합 의결 구조 등 복합 쟁점으로 확산된 상태다.
일부 조합원들은 이를 두고 “설계 설명과 다른 비상식적 시공”이라고 주장한다. 가장 큰 문제로 지목되는 부분은 중앙부 천장형 후드다. 현장에서 만난 한 조합원은 “층고가 높지 않은데 길이가 긴 후드가 내려와 있어 사전 점검 과정에서 머리를 여러 차례 부딪혔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실제로 키 170cm 중반의 성인이 서 있을 경우 이마 높이와 후드 하단부가 가까워 보이는 모습도 확인됐다.
그는 이어 “95형은 애초 아일랜드 식탁을 중심으로 활용하는 구조였는데, 중앙에 후드가 설치되면서 주방 동선이 복잡해졌다”며 “결국 일부 조합원들은 사비를 들여 구조를 손보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중앙부에 인덕션과 후드만 배치되지 않았어도 기존 아일랜드 식탁 구성을 활용할 수 있었을 텐데, 조리공간이 들어가면서 추가 공사가 불가피해졌다”고 덧붙였다.
한 업체 관계자는 “현재 구조에서는 아일랜드와 식탁을 동시에 사용하기 어려워 아일랜드를 절단해 벽 쪽으로 붙이고, 주방 가전 위치를 일부 이동하는 방식으로 공사를 진행한다”며 “천장형 후드를 철거하고 구조를 다시 잡는 작업까지 포함하면 기본 공사비는 약 700만 원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후드 구조 변경으로 하부 수납 공간이 줄어들 수 있어 수납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며 “이럴 때는 추가로 수납장을 제작하는데, 옵션에 따라 200만~300만 원가량 비용이 더 들어간다”고 덧붙였다.
공사 기간에 대해서는 “주방만 단독으로 작업하면 빠르게 끝날 수 있지만, 다른 세대 공사 일정과 겹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열흘 정도 여유를 두는 게 좋다”며 “입주 일정과 겹칠 경우 최소 2주 전에는 계약을 진행해야 공사를 마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인테리어 업자는 공사를 하지 않을 경우 거실에 식탁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84C 타입은 아일랜드 식탁을 일부 절단해야 식탁을 놓을 공간이 확보된다”고 말했다.
본지가 현장에서 만난 여러 84C 타입 입주 예정 조합원들도 “현재 구조로는 거실과 주방에 식탁을 둘 마땅한 공간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결과적으로 아일랜드 식탁 구조 변경 공사가 선택이 아니라 사실상 불가피하다는 분위기가 현장 전반에 퍼져 있었다.
이에 대해 일부 조합원들은 분양 계약과 총회 자료에 포함된 ‘A 도면’과 실제 시공된 ‘B 도면’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총회 역시 A 도면을 전제로 진행됐는데 이후 현장에서 다른 구조가 확인됐다”며 “도면이 언제, 어떤 절차로 변경됐는지 관련 회의록과 공문 등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사업시행인가 변경에 해당하는 사안이라면 조합원 의결이 선행됐어야 한다”며 절차적 정당성을 문제 삼고 있다.
반면 조합과 시공사 측은 “설계 변경이나 시공 도면은 조합 협의와 인허가 절차를 거쳐 확정된 인가 도서 기준으로 일관되게 진행됐다”는 입장이다.
조합 측은 본지에 “논란이 된 평면은 2023년 시공사 선정 당시 제안서와 인가 도서, 시공 도서에 모두 반영된 설계”라며 “조합 안내 책자에 2022년 설계안이 잘못 인쇄된 행정적 실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후 인허가 도서와 시공 기준은 현재 평면대로 확정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 “조합이 내부 인테리어 설계에 직접 관여한 적은 없으며, 시공사인 롯데가 자체 디자인·인테리어 팀을 통해 설계를 제안하고 인허가를 거쳐 시공한 것”이라고 밝혔다. 84C 타입 배정 방식에 대해서도 “A·B·C 타입을 통합 신청한 뒤 추첨으로 배정된 구조여서 특정 평면을 지정해 분양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일부 입주 예정자들이 추가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개인 취향 문제”라는 입장이다. 조합 측은 “아일랜드 구조를 선호하는 조합원도 많고 변경을 원하는 조합원도 있다”며 “인테리어는 개인별 선호 차이가 큰 영역이라 조합이 일괄적으로 개입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합 차원의 보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합 자금을 사용하려면 총회 의결이 필요하지만 전체 조합원 동의를 얻기 어려운 사안”이라며 “법원 판단으로 책임 범위가 정해진다면 그에 따르겠지만, 조합이 자체 판단으로 일괄 보상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롯데건설 역시 “시공사는 승인된 설계도면대로 공사했을 뿐 임의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조합원 일부는 “총회 자료만으로는 도면 변경 경위, 설계 조정, 감리 검증 등 핵심 사항이 조합원 눈높이에 맞게 충분히 설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의사결정이 일부 인원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구조처럼 느껴졌다”고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의결 절차의 투명성 문제도 제기된다. 일부 조합원들은 총회 및 서면결의 과정에서 외주 인력으로 알려진 OS 요원들이 조합원 자택을 방문해 서면결의를 도왔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이들은 “고령 조합원이 많은 상황이라 하더라도, 외부 인력이 직접 찾아와 절차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가 정확히 반영됐는지 의문”이라며 “이미 답을 정해 놓고 도장만 받으러 다닌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부동산 정비사업 소송을 다뤄온 변호사는 본지에 “조합원이 직접 하지 않은 투표를 제3자가 대신 처리했다면 사문서 위조나 업무방해 등 형사 쟁점이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서면결의서 작성 경위나 전자 인증 절차 로그 등 객관적 자료가 확보돼야 입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문제를 제기하는 조합원들이 관련 서류나 기록을 직접 보유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면,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법적 대응을 둘러싼 전망도 엇갈린다. 일반분양자는 분양계약 당사자인 조합을 상대로, 조합원 역시 조합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일반적 해석이다. 다만 소송 결과와 무관하게 비용 부담이 복잡하게 얽힌다는 점이 변수다.
아파트 하자소송을 다년간 맡아온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본지에 “특정 타입에서 손해가 인정돼 일부 조합원에게 배상이 이뤄지더라도 그 재원은 결국 조합 사업비에서 나간다”며 “사업비가 늘어나면 청산 시 전체 조합원이 분담 비율에 따라 부담을 나눠 갖게 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수년간 소송을 이어가기보다 개인 비용을 들여 내부 구조를 손보는 쪽을 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전언도 나왔다. 입주를 앞둔 일부 조합원들은 실제로 구조 변경과 가구 재배치를 위해 자비로 공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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