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새벽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 미국이 자랑하는 F-22와 F-35 전투기가 나타났다. 깜짝 놀란 베네수엘라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죽음의 천사로 불리는 AC-130J 고스트라이더가 카라카스 하늘을 장악할 때 최정예 특수부대 델타포스는 헬리콥터로 이동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잠든 사이 13년 독재가 3시간만에 무너졌다. 델타포스는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했다. 확고한 결의(Absolute Resolve) 작전을 성공시킨 미국은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납치해서 뉴욕으로 데려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승리를 선언했다. 베네수엘라를 상대로 승리한 날은 공교롭게도 1월 3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에도 1월 3일 군사작전을 지시했다. 이란 전쟁영웅 가셈 솔레이마니 장군은 이라크 바그다드 공항 근처에서 미군 드론에 의해서 암살당했다. 조시 부시 대통령도 1990년 1월 3일 파나마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를 체포했다. 고립주의를 외치던 트럼프는 왜 승리의 날에 델타포스를 보내 마두로를 체포했을까?
“우리가 베네수엘라를 직접 운영(run)하겠다.” 트럼프가 통치를 언급하자 잘못 들은 건 아닌지 귀를 의심했다. 더이상 세계 경찰 노릇을 하지 않겠다던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총독을 자처했다. 의회에 승인을 받지도 않았고 동맹국에 양해를 구하지도 않았다. 미군이 베네수엘라에 주둔하면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꾼 악몽을 되풀이할 수 있다. 출구 전략 없는 도박을 싫어하는 미국이 왜 스스로 전쟁이란 늪에 발을 내디뎠을까?
트럼프가 마두로를 체포한 명분은 마약이었다. “미국인을 죽이는 독극물을 차단하겠다”던 트럼프는 “불법 독재자 마두로가 치명적인 불법 마약을 미국으로 대량 유입시킨 거대한 범죄의 핵심인물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인을 죽이는 마약은 베네수엘라산 코카인이 아니라 멕시코산 펜타닐이었다. 펜타닐은 미국인 약물 사망 원인 가운데 70%를 차지한다. 게다가 베네수엘라는 콜롬비아산 코카인 경유지에 불과하다. 트럼프는 나르코 테러리즘을 앞세워 콜롬비아가 아닌 베네수엘라를 괴롭혔다.
미국은 평소 민주주의 회복을 외쳤다. 하지만 트럼프는 달랐다. 마두로가 사라진 베네수엘라에 민주주의가 아닌 석유회사를 강조했다. 트럼프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미국 대형 석유회사들이 진출해서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 심각하게 망가진 인프라를 복구할 것이다”고 말했다. 매장량 1위인 베네수엘라 석유를 수탈하겠다는 뜻이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트럼프가 마두로를 법정에 세우거나 베네수엘라에 민주주의를 전달하기보다 석유를 탐낸다”고 꼬집었다.
트럼프는 그동안 노벨평화상을 꿈꿨다. 다른 나라 대통령을 납치한 마당에 이제 노벨평화상을 받기란 글렀다. 트럼프에게 노벨평화상보다 필요한 건 뭘까?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으로 40% 안팎으로 떨어진 지지율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 때문에 물가가 오른다는 변명보다 확실하게 미국 대중에게 도파민을 뿜게 할 한방이 필요했다. 부시가 36년 전 노리에가를 체포한 뒤 지지율 80%를 자랑했듯 트럼프도 마두로를 때려잡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마두로 체포는 국제법 위반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푸틴을 닮아간다. 마두로가 뉴욕으로 끌려가자 트럼프는 베네수엘라 석유를 언급했다. “우리는 석유를 대량으로 판매하겠다.” 베네수엘라 석유를 왜 미국이 팔겠다는 것일까? 스페인과 쿠바, 콜롬비아, 인도, 튀르키예에서 미국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중간선거를 앞둔 트럼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국제법을 무시한다는 비판을 받더라도 자원을 약탈하는 21세기 제국주의를 선택했다.
마두로가 떠난 자리는 부통령의 몫이다. 델시 로드리게스 베네수엘라 부통령은 “야만적인 납치이자 제국주의적 침략이다”고 결사항전을 독려했다. 그러나 딱 하루만에 말을 바꿨다. 로드리게스 대통령 권한대행은 미국에 협력을 요청했다. 마두로 정권의 2인자는 미국에 적극적으로 협력할 준비가 됐다. “베네수엘라에서 대통령은 마두로 한 명뿐이다”던 로드리게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미국에게 협조적인 자세를 보였다.
베네수엘라와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구한말을 떠올린다. 스스로 나라를 지킬 힘이 없다면 식민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자유무역과 민주주의가 흔들리면 보호무역과 제국주의가 꿈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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