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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네스코(UNESCO·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의 반이스라엘·친중국 성향, 다양성 정책 등을 문제 삼아 탈퇴를 결정했다고 22일(현지 시간)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였던 2023년 6월 재가입한 지 2년 만이다(탈퇴 발효는 내년 12월 말). 애나 켈리 백악관 부대변인이 이날 “유네스코가 ‘워크’(woke) 및 분열적인 문화·사회적 의제를 지지한다”며 “이는 우리 국민이 작년 11월 (대선에서) 선택한 상식적인 정책들과 전혀 맞지 않는다”고 탈퇴 이유를 밝혔다.
‘Woke’란 ‘wake’(깨다·깨우다)의 완료형 ‘깨어난 상태’를 말하며 좌편향된 세계관·가치관을 장착한 사람들을 뜻하기도 한다. 정치적올바름(PC)주의를 한층 강화한 입장을 그래서 ‘워키즘’(Wokeism)이라고 부른다. 이것이야말로 1990년대 탈냉전 이래 30여 년간 서방 세계의 학계·문화계을 지배하며 일상에까지 파고든 ‘문화적 마르크스시즘’의 또 다른 얼굴로 통한다. 켈리 부대변인이 “트럼프 대통령 원칙은 늘 ‘미국 우선주의’” “국제기구 참여가 반드시 국익에 부합하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으나 보다 근본적인 것은 워키즘과의 싸움으로 볼 수 있다.
반(反)워키즘이 서민·중산층 살리기 프로젝트인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와 함께 ‘트럼프주의’를 구성한다. 기후협약 탈퇴, 하버드대 국가보조금 중단 등도 맥락이 같다. 트럼프는 ‘기후위기론’이 부풀려졌다는 과학자들 쪽 말을 신뢰하며 이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된 측면에 집중해 왔다. ‘사실상 중국공산당 당교(黨校)’라는 소리마저 들어 온 하버드대가 최근 트럼프에게 국가 보조금 중단 등 압박을 당한 근저엔 워키즘 논리를 생산·심화하는 학술계 본산이라는 위상이 크게 작용했다.
보도에 따르면 2월 트럼프는 유네스코 참여 지속 여부 판단을 위해 관련 부서에 90일간 검토하도록 한 결과, 유네스코의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과 친중국·친팔레스타인 성향의 위험성이 정부 관계자·전문가들에게 공유됐다고 전해진다. 최근 사례로 유네스코 ‘인종차별대응지침’이 각국에 보조금을 제시하며 ‘경쟁적인’ DEI 친화적 정책 수립을 촉구한 게 지적됐다. ‘남성적 사고방식 전환 이니셔티브’(Transforming MEN'talities initiative)에선 남성성을 ‘바꿔야(없애야) 할 대상’으로 본 성(性)역할 부정 등의 인식이 문제였다.
유네스코가 유대교 성지를 ‘팔레스타인 세계유산’으로 지정한 것, 각종 문서 등에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했다고 표현한 것, 하마스 비판 없이 이스라엘만 압박하는 것 등도 문제시됐다. 유네스코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2~1944년 연합국 교육부 장관들이 영국 런던에 모여 교육 재건과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기구를 창설하기로 뜻을 모아 1945년 11월16일 런던에서 37개국 대표가 유네스코 헌장을 채택하며 출발했다. 이후 미국은 유네스코 역대 재정 기여도 면에서 단연 으뜸이었다(22~25%).
단일 국가 중 비교적 안정적 부담을 해 온 일본(7~10%) 외에 중국의 입지 상승이 두드러진다. 지난 20년 사이 유네스코 예산의 중국 부담 비중이 2010년 5%, 2019년 15%, 2022년 21%로 늘어 미국 다음가게 됐다. 중국으로선 이른바 ‘문화 굴기(崛起)’였던 셈이다. 그 결과 중국은 세계문화유산을 대거 등재시켜(누적 56개) 이 방면 최다 국가인 이탈리아 뒤를 잇게 됐다. 다만 그 과정에서 소수민족들의 전통춤·의상·음악 등이 ‘중국 것’으로 기록되면서 ‘중화주의’ 역사관의 확산 효과도 낳고 있다. 한복 역시 중국의 일부, 심지어 ‘한푸’(漢服)로 주장되기에 이른 셈이다. 또 대만 유네스코 가입에 대한 중국의 조직적 반대 등 국제정치의 장으로 이용된 측면도 강하다.
한편 유네스코 측은 미국의 탈퇴 결정에 “예상했다”면서도 유감을 표했다. 오드레 아줄레 유네스코 사무총장이 이날 성명에서 “다자주의의 기본 원칙에 위배되며 무엇보다 미국 내 많은 파트너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짚었다. 여기서 ‘미국 내 파트너’란 유네스코와 협력 중이거나 수혜자인 기관·단체·개인을 가리킨다. 유네스코 관련 연구센터, 교수직 네트워크, 기후변화·문화유산·교육 분야 공동 프로젝트 참여자들 등 각종 NGO와 100여개 교육기관들 지원도 향후 중단 내지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줄레 사무총장은 ‘트럼프의 미국’에 대비해 구조 개혁과 예산 조달원 다각화를 노력해 왔다며, “현재 미국 분담금이 8%로 줄어든 반면 유네스코 전체 예산은 꾸준히 증가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거론한 탈퇴 이유들도 반박했다. “유네스코의 노력, 특히 홀로코스트 교육과 반유대주의 투쟁 분야의 현실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본부가 놓인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엑스(X)에 유네스코를 “과학·해양·교육·문화·세계 유산의 보편적 수호자”로 칭송한 글을 올리며 “미국이 탈퇴해도 이 투쟁에 앞장선 사람들과 함께하겠다는 우리 의지가 결코 약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아직 중국으로부터 공식 논평이 없다. 2017년 미국 탈퇴 당시 원칙론적 비판성 언급을 했으며 이번엔 관영 매체가 팩트만 전달할 뿐이다.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국은 유네스코의 정치화와 예산 낭비를 들어 처음 탈퇴했다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인 2002년 재가입했다. 공산권 몰락 후 10여년 된 시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승리 아래 여유로운 ‘좌우 통합’이 예상됐던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1기 때 미국은 유네스코를 전격 탈퇴했고 후임인 바이든 정부가 중국 견제를 내세워 2023년 재가입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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