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만한 성장 속 ‘주식’에 쏠리는 한국 부자들',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이른바 ‘한국 부자’의 수가 20...'))
불확실성의 시대, 한국 부자는 전체 포트폴리오를 방어적으로 전환하며 '현상 유지'를 택했다. 금융과 부동산 모두 공격적인 투자를 줄이고 안정 지향 성향이 50%에 육박하며 관망세에 진입했다. 부자는 리스크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영역으로 옮기는 전략을 취했다.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이른바 ‘한국 부자’의 수가 2025년 47만6000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3.2% 증가한 수치로, 이는 전체 인구의 0.93%에 해당한다. 부자 수는 꾸준히 늘어났지만, 증가세는 최근 10년 평균 증가율(7.3%)에는 크게 못 미치며 2년 연속 완만한 성장 흐름을 보였다. 부자의 양적 확대 속도가 확연히 둔화된 모습이다.
이 같은 변화는 국내외 거시 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심화된 것과 자산 환경의 구조적 전환이 맞물려 있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와 규제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주식 시장이 인공지능(AI) 등 기술주를 중심으로 상대적인 강세를 보이면서, 부자들의 자산 포트폴리오가 실물자산(부동산) 중심에서 금융자산 중심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졌다. 이는 2025년 한국 부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부동산↓·금융↑’이라는 구조적 전환으로 요약된다.
14일 KB금융연구소가 발간한 ‘2025 한국 부자 보고서’는 이러한 부의 쏠림과 구조적 변화를 수치로 명확히 보여준다. 2025년 한국 부자가 보유한 총금융자산 규모는 3066조 원으로, 전년 대비 8.5%라는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다. 이는 같은 기간 전체 가계 금융자산 증가율(4.4%)의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금융시장의 회복과 자산 이동이 부자들의 자산 증식 속도를 가속화했다는 방증이다.
이에 따라 부자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전체 가계 금융자산(5041조 원)의 60.8%를 차지하며, 전년(58.6%)보다 2.2%p 확대됐다. 일반 가계 대비 부자의 자산 축적 속도가 더욱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히, 부의 집중 현상은 상위 계층으로 더욱 강화됐다. 금융자산 100억 원 이상 300억 원 미만의 고자산가는 3만2000명, 300억 원 이상 초고자산가는 1만2000명으로 집계됐다. 전체 부자의 2.5%에 불과한 초고자산가가 보유한 금융자산은 1411조 원으로, 전체 부자 금융자산의 46.0%를 차지했다. 이는 부동산 규제의 여파와 금융시장 성과가 맞물리면서 고자산가 및 초고자산가의 수와 보유 자산이 급격히 늘어났음을 의미한다. 부동산을 정리하거나 투자를 망설이는 과정에서 확보된 유동성이 금융자산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부의 양극화 심화에 일조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자의 지역 분포는 여전히 수도권 중심이지만, 미세한 변화가 감지된다. 전체 부자의 43.7%인 20만7900명이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며, 경기·인천을 포함한 수도권 거주 비중은 69.2%에 달한다. 다만 이 비율은 전년(70.4%)보다 1.2%p 하락해 비수도권 지역의 부자 비중이 소폭 확대되는 변화도 포착된다. 이는 지방광역시를 중심으로 한 신흥부자들이 등장하거나 지역 내 자산 가치 상승이 일부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그러나 서울 내부로 시선을 돌리면 부의 집중도는 더욱 선명해진다. 전통적인 부촌인 강남·서초·송파 등 강남 3구에만 서울 거주 부자의 46.8%가 몰려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종로·용산을 비롯해 성동·광진·동작·성북 등 한강 인접 지역까지 고자산가 거주가 확산되며 이른바 ‘한강 벨트’ 중심의 부 집중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이는 금융·정보 접근성과 더불어 삶의 질과 주거 환경을 중시하는 초고자산가들의 선호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금융자산과 대조적으로, 부동산 자산은 관망 국면이 심화됐다. 2025년 부자가 보유한 총부동산자산은 2971조 원으로 전년 대비 6.0% 증가했지만, 증가율은 2024년(10.2%)보다 크게 둔화됐다. 부동산 경기 불확실성과 정부의 규제 기조가 지속되면서 신규 투자가 위축된 결과다. 개인 명의 부동산뿐 아니라 법인 명의 부동산의 증가 폭까지 둔화된 점은 부자들이 부동산 시장에 대한 공격적인 확대를 보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같은 흐름은 자산 포트폴리오 변화로 직결됐다. 한국 부자의 총자산은 부동산자산 54.8%, 금융자산 37.1%로 구성되어 여전히 부동산 비중이 가장 크지만, 전년 대비 금융자산 비중은 확대됐다. 특히 예·적금, 주식, 유동성 금융자산 비중이 늘어난 것이 특징이다. 이는 부자들이 부동산 시장의 변동성에 대응하기 위해 언제든 투자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현금성 대응력’을 확보하는 전략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부자들의 지난 1년간 투자 성과는 이러한 포트폴리오 전환의 합리성을 뒷받침한다. 지난 한 해 금융투자에서 수익을 경험했다는 응답은 34.9%로, 손실 경험(9.4%)을 크게 웃돌았다. 특히 주식 투자에서 수익을 냈다는 응답이 40.0%에 달해 금융자산 중에서도 주식이 성과를 견인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부동산 투자는 ‘수익도 손실도 없었다’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하며 관망 국면이 이어졌다.
이 같은 경험은 2026년 투자 전망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부자들은 전반적인 금융투자 기조로 ‘현상 유지’를 가장 많이 선택하여 투자 리스크를 통제하려는 경향을 보였지만, 단기와 중장기 모두에서 가장 높은 수익이 기대되는 투자처로는 ‘주식’을 꼽았다.
인공지능(AI) 기술 혁신 주도의 성장 기대, 글로벌 증시 회복 전망 등은 주식 선호의 강력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실제로 주식에 대해 ‘투자금액을 늘리겠다’는 응답은 17.0%로, 다른 자산군 대비 가장 높아, 주식 투자를 통한 선별적인 고수익 추구 움직임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부자들의 이러한 전략은 무작정 '늘리기(확대)'보다는 유망한 종목을 '고르는(선별)' 데 집중하는 정교한 관리·운용 모델의 정착을 의미한다.
종합하면 2025년 한국 부자는 더 이상 부동산 중심의 무조건적인 자산 '축적 모델'에 머물러 있지 않다. 불확실성 속에서 금융자산 중심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고, 위험은 통제하며 기회는 선별하는 '관리·운용 모델'을 택하고 있다. 부자의 수는 완만하게 늘었지만, 자산 이동의 방향과 방식은 훨씬 더 정교해졌다. 이것이 2025년 한국 부자의 현재이자, 향후 국내 자산 시장의 흐름을 가늠할 중요한 신호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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