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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채 시간만 허비하고 있는 동안 일본은 ‘굴복’이 아닌 ‘전략적 선택’으로 협상을 전격 타결지었다. 8월1일 상호관세 부과 유예 시한을 코앞에 둔 현 시점에서 우리 정부는 일본의 협상 전략을 면밀히 분석하고 이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일본은 5500억 달러를 미국에 투자하고 쌀과 자동차 시장을 일부 개방하는 조건으로 자동차 관세를 27.5%에서 15%로 낮추는 데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만족감을 드러냈고, 도요타 주가가 14% 급등하며 닛케이 평균이 3.5% 상승하는 등 일본 증시는 환호했다. 이는 일본이 핵심 이익은 지키면서도 타협 가능한 영역에서는 과감한 양보를 단행한 결과로 평가된다.
반면 우리나라의 상황은 암울하다. 일본보다 늦게 시작된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고, 한·미 2+2 통상 협의마저 미국 측의 일방적 취소로 돌연 무산됐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의 방미도 별다른 성과 없이 끝났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우리 기업들이 미국에 투자할 여력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점이다.
일본이 550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업 친화적 정책 환경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상법 개정으로 기업 경영권을 위협하고, 노란봉투법으로 기업 활동을 제약하며, 법인세를 25%로 인상하는 등 기업하기 더욱 어려운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우선 이재명정부의 증세 기조는 기업들의 투자 여력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다. 법인세 세수가 2022년 103조6000억 원에서 지난해 62조5000억 원으로 급감한 것은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를 방증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요구하는 4000억 달러 규모의 대형 투자를 감당할 기업이 과연 몇이나 될까. 정부가 검토하는 1000억 달러 투자안도 일본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해 미국의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친다.
상법 개정으로 인한 기업들의 우려도 심각하다. 상장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77%가 ‘더 센 상법 개정이 기업 성장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했다. 74%는 ‘경영권 위협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기업들이 이런 불안감에 떨고 있는 상황에서 해외 투자를 늘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일본의 또 다른 협상 카드는 쌀 시장의 전략적 개방이었다. 일본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에 따라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무관세 쌀 77만 톤(t) 중 미국산 비율을 기존 45%에서 더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는 추가적인 시장개방 없이도 미국에 상당한 실익을 안겨 주는 묘수였다.
우리나라도 매년 40만t의 쌀을 무관세로 의무 수입하고 있다. 현재 이 물량 중 미국쌀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다. 게다가 이재명정부는 쌀 전량 매입 정책을 고수하며 미국 쌀 수입 확대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부는 쌀과 소고기 시장 개방을 협상 카드로 쓰지 않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했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현실을 외면한 안일한 발상이 아닌가.
일본은 이시바 총리가 직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협상 대표 장관이 8차례나 방미하며 끈질긴 외교전을 펼쳤다. 반면 우리는 정상회담조차 성사시키지 못했고, 차관급인 통상교섭본부장이 협상을 주도하고 있다. 협상의 격과 온도 차이가 명확하다.
무엇보다 미국과의 소통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2+2 협의 취소라는 외교적 결례를 당하고도 “다른 내포된 의미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은 지나치게 안일한 대응이다. 이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트럼프와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장관급 협상을 통해 막판 대타협을 이뤄 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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