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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땅] ‘AI와 유시민’ 누가 더 위험한가

박선옥 기자 기자페이지 + 입력 2025-06-02 06:30:00

▲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지난달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아내 설난영 여사를 소개하고 있다. 박미나 선임기자 ⓒ스카이데일리

최근 구글이 세상에 내놓은 스마트 안경은 단순한 기계라기보다는 이 시대가 나아가는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이는 더 이상 인간이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 인간이 자신의 감각과 판단을 기술에 위임하는 시대를 보여준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 과연 인간은 자유로운가. 인공지능(AI)이 내 생각과 판단을 앞질러 임의의 정보를 눈앞에 보여준다면 이것은 결국 나의 사고 능력을 떨어뜨리는 일이 되지 않을까.

기술이 대신 설명해 주고 보여주는 세상은 놀라울 만큼 선명하다. 구글 스마트 안경에는 AI ‘제미나이’가 탑재되어 마치 눈에 이식된 뇌처럼 작동한다. 우리는 더는 외우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 추론하지 않아도 된다. 질문만 던지면 된다. 그러면 대답은 안경이 해 줄 것이다.

문제는 이 ‘대답’이 과연 누구의 판단이냐는 데 있다. 우리가 눈으로 본 장면은 과연 우리가 ‘해석’한, 혹은 우리가 ‘선택’한 장면인가. 인간의 인지·감각·판단이 기술에 ‘위임’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스스로 생각하는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문득 묻게 될 것이다. 기술이 우리의 판단보다 앞설 때 우리의 내면은 점점 더 흐릿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똑같은 현상이, 지금 대한민국의 대선 정국 한복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문재인정부 당시 ‘어용지식인’을 자처했던 유시민 작가가 최근 김문수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배우자 설난영 씨에 대해 망언을 쏟고는 ‘내재적 접근법’이라고 해명한 발언이 뭇매를 맞고 있다. 유씨는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유력한 정당의 대통령 후보 배우자라는 자리가 설난영 씨의 인생에서는 거기 갈 수가 없는 자리”라며 “그래서 이 사람이 지금 발이 공중에 떠 있다. 제정신이 아니다”고 발언했다. 그러고는 비난이 쏟아지자 ‘내재적 접근법’이라는 현학적인 용어를 들먹이며 마치 학술적 판단인 양 또 하나의 해석을 담은 안경을 국민의 눈에 씌우고 있다.

2025년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선거를 앞둔 시점에 정치계의 논객으로 불려 온 이가 내뱉은 이 망언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를 바라보고, 어떤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며, 어떤 ‘시선’으로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유시민의 발언은 마치 스마트 안경처럼, 겉으로는 해석과 판단을 제공하는 ‘정보’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정보는 곧바로 편견으로 이어진다. “고졸이면 안 된다.” 누가 그렇게 정했는가. 무엇을 기준으로 그런 판단을 내리는가. 인간을 평가하는 데 있어 학력 한 줄로 자격을 논하는 시대, 그것은 과연 성숙한 사회인가. 이에 대한 건강한 비판이 따르지 않는다면 ‘자기 판단’을 상실한 채 타인의 시선에 자신을 내맡긴 사회가 될 위험성이 커진다.

구글 스마트 안경은 사용자의 시선을 ‘학습’한다. 무엇에 관심을 가졌고, 무엇을 궁금해 했으며, 어떤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는지까지 기록한다. 그러고 나서 AI는 그 사람에게 맞춤형 답변을 준다. 스스로 사고하지 않아도 되는 삶이다. 유시민의 발언 역시 마찬가지다. 청중의 코드에 맞춰 편견을 자극하고 그들이 듣고 싶어하는 ‘답’을 내놓는다. 그럼에도 이런 발언이 여전히 같은 진영에서는 박수를 받는다는 사실이 더 무섭다. 우리가 스스로 판단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사고는 없다. 오직 ‘자극’과 ‘반응’만 존재한다.

이번 대선은 한국 사회의 ‘인지 능력’을 가늠하는 시험대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유권자인가, 아니면 주어진 이미지와 프레임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가. 어떤 후보의 배우자가 고졸이든 박사든, 중요한 건 우리가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단순히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의 맥락을 이해하고 판단하며 가치의 우선순위를 세우는 것, 그것이야말로 주권자의 책임이자 의무다.

기술이 점점 더 정교해질수록, 우리는 ‘진짜 나’를 잃어 간다. 마찬가지로 정치가 점점 더 말초적이 될수록 우리는 ‘생각하는 유권자’임을 포기하게 된다. 한 정치 논객이 오늘의 유권자에게 “당신도 이제 생각하지 마라, 내가 알려 주는 것이 곧 진실이다”고 말한다면 그는 구글의 AI보다 더 위험한 존재다.

내일 우리는 투표장에 선다. 스마트 안경은 쓰고 있지 않지만, 이미 많은 이가 자기 눈이 아닌 남의 ‘프레임’을 쓰고 있다. 이번만큼은 그 프레임을 벗어야 한다. 누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고 강요하든 우리는 스스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시선은 과연 내 것인가.” 그것이 진짜 민주주의의 시작이다.

박선옥 논설실장

박선옥 기자 sobahk@skyedaily.com 기자페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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