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27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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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28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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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30º
습도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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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도 처서도 다 지났건만 늦더위는 좀처럼 물러갈 생각이 없는 듯하다. 더위가 길어지다 보니 시원한 강원도 산간 지역이 늦여름 여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강원도 정선은 겨울이면 스키 인파가 몰리는 곳이지만 이맘때 방문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기온 속에서, 찬란했던 석탄시대의 흔적을 되짚는 특별한 시간으로 꾸밀 수 있다.
사북에서 만항재 가는 길에 ‘삼탄아트마인’이 있다. 2001년 폐광된 삼척탄좌를 문화 예술 공간으로 변모시킨 곳이다.
10만 점의 유물과 만나다
삼탄아트마인의 본관인 삼탄아트센터는 절벽 아래 세워진 삼척탄좌 건물을 개조하면서 주 출입구를 4층에 두었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관람하는 구조로, 지하층을 다 구경하고 나면 비로소 지상에 도달하게 된다.
입구에 들어서면 수건으로 탄부의 얼굴을 그려 온 권학중 작가의 무채색 작품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검은 탄이 잔뜩 묻은 얼굴,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 앞에선 누구라도 발길을 멈추게 된다.
4층 안쪽에는 832L 카페와 기념품점, 레지던스, 와인갱이 자리하고 있다. 서울의 여느 미술관·호텔·카페 시설과 비교해도 조금도 뒤지지 않는 시설이다. 이곳을 만든 이의 세련된 감각에 박수를!
3층과 2층에는 각종 자료실과 수장고·미술관·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삼탄자료실과 삼탄뮤지엄은 삼척탄좌 시절의 광원일지·급여명세서 등의 자료와, 광원들이 사용하던 무전기, 방독면, 랜턴 배터리 등의 물건을 전시해 두고 있다.
서류 한 장도 소홀히 하지 않은 귀한 마음 씀씀이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2층 공동샤워실은 광원의 숨결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타일 하나, 샤워 꼭지 하나까지 그대로 보존돼 있다.
샤워기는 하나의 라인에 네 개의 수도꼭지가 달려 있어 네 명이 마주 보며 샤워하도록 설계되었다. 최대 300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샤워 시설이란 게 따로 없었기 때문에 독일에서 직수입해 설치했다.
이곳 샤워실 갤러리에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것과 동일한 크기, 동일한 형태의 ‘밀로의 비너스’가 전시돼 있다. 단순한 모조품이 아니라 등과 배의 패인 자국까지 세세하게 살린 정교한 작품이다. 그밖에 다양한 조형 작품과 만날 수 있다.
검은 것이 멸하면 흰 것이 흥하리라
1층 마인갤러리에서는 ‘흑멸백흥(黑滅白興) 천년의 사유’ 전을 진행 중이다. 8월 한 달 예정으로 개최했으나 관람객의 반응이 뜨거워 10월31일까지 연장됐다.
전시는 ‘지역 정체성 찾기’ 스토리텔링 기획으로 작년 ‘윤후명 문학미술전’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하는 것이다. 사실 이번 여행은 이 전시회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흑멸백흥이라는 전시명은 인근 정암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설화에서 따왔다. 신라시대 대국통(국사) 자장율사가 정선에 정암사를 창건하면서 ‘검은 것이 멸하면 흰 것이 흥하리라’는 글을 남겼다. 여기서 흰색은 평화와 번영을 상징한다.
전시 제호는 중국 장부평(張富平) 산시성 허우마시 서예가협회 부회장의 친필이다. 한·중미술의 우호와 협력 차원에서 제공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도 양국의 협력 차원에서 한·중에서 활동하는 현대미술 작가들이 사이좋게 참여했다.
참여 작가는 △권학준 △박봉기 △한·중 아트프로젝트 사야(SAYA) △옌빈 △위세복 △이재삼 △이지훈 △장이 △조지안홍 △지오최 △추니박 △황주리로 회화와 조각작품이 두루 포함돼 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들은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친견한 중국 산서성 문수성지 오대산(청량산)을 다녀오기도 했다.
오대산은 아미산(스촨성·보현보살), 구화산(안후이성·지장보살), 보타산(저장성·관음보살)과 함께 중국 4대 불교 명산으로 꼽히는 곳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일행은 오대산과 함께 서안 중난산 운제사와 중국 3대 석굴인 대동 윈강석굴, 응현목탑(황룡사9층목탑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 등을 답사한 후 삼탄아트마인에서 레지던시 작업을 거쳐 작품 제작에 들어갔다.
말하자면 이번 작업은 해발 3000m 불목지대 오대산과 천년고찰, 박물관, 석굴사원을 돌면서 천년의 연기(緣起)를 사유한 결과물이다.
문수보살의 초상을 픽셀아트로 제작한 위세복 작가는 자장율사의 1000년 전 중국 수행처와 경주 분황사지, 황룡사터 등에서 주운 작은 돌 파편을 이용해 전시의 의미를 더했다.
장이 작가는 오대산 중대 태화지의 흙을 섞어 전통 방식으로 스님 두상을 제작한 후 오대산 야외에 두어 비·바람에 풍화되어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제행무상’ 영상 작품을 선보였다. 온전했던 작품이 바람 속 먼지로 사라지는 데 정확히 60일이 걸렸다.
황주리 작가는 ‘황주리 스타일’이라 불리는 ‘그대 안의 붓다’ 시리즈를 공개했다.
그는 10년째 캔버스 외에 접시, 쟁반, 업체 판촉물 등 세상의 모든 사물 위에 붓다를 그려 넣고 있다. 그 가운데는 옛날 옛적 어머니가 딸의 혼수품이라며 구입한 후 쓰지 않고 모셔둔 귀한 접시도 포함돼 있다.
작가는 오브제(사물) 시리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물 위에 그린 붓다의 다양한 형상들은 사물에 깃든 나의 마음이기도 하다. 세상의 사물 중에는 귀하고 값비싼 것이나 흔하디흔하고 값싼 것이나 세월이 흐르면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한정판으로 남아 골동품으로 낡아간다. 사물에 부처를 담는 동안 작가는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나 쉼과 자유를 얻었다.”
프로이드도 ‘붓다는 마음을 발견한 최초의 심리학자’라고 했다. 무자비의 시대, 부처를 통해 관람객도 자비의 마음을 가져 보면 어떨까.
수마노탑의 정신을 잇는 삼탄아트마인
전시를 기획한 김형석 예술감독(갤러리 예술섬 대표)은 “이번 전시회는 ‘지역 정체성’ ‘문화적 상상력’ ‘예술적 창조성’을 키워드로 ‘강원도다움’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삼탄아트마인은 자장율사가 7년간의 당나라 산서성에서 수행한 후, 신라로 귀향해 창건한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인 ‘태백산 정암사’의 땅, 불국토 위에 조성된 곳이다. 이번 전시는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귀국할 때, 석가세존 진신사리 등 가져와 모신 정암사 수마노탑의 국보 승격을 기념하고 호국불교 정신 탐구하는 미학적 여정이다”고 말했다.
삼탄아트마인과 지척에 있는 정암사 수마노탑은 정선의 자랑으로 2020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정암사 적멸보궁 뒤쪽 언덕에 자리해 있다. 9m 규모의 수마노탑은 급하게 흘러내리는 산비탈에 축대를 쌓아 평평하게 만든 후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아 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회녹색의 수성암질석회암을 길이 30∼40㎝, 두께 5∼7㎝의 크기로 잘라 깔끔하게 다듬었다. 얼른 보아서는 가마에서 구운 벽돌인지 돌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꼭대기에는 청동으로 만든 상륜이 설치되었는데 꽃무늬를 뚫새김으로 새긴 오륜탑 위에는 병 모양의 조각이 얹혀 있으며 네 가닥으로 돌출된 끝부분에는 풍경이 달려 있다. 수마노탑은 규모가 크진 않지만 형태와 조성 수법이 매우 정교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실내 관람을 마쳤다면 본관 외부로 이동해 보자. 레일바이뮤지엄은 삼척탄좌에서 캐 올린 석탄을 집합시키던 시설을 전시 공간으로 꾸민 곳이다.
삼척탄좌 광구개발사업은 1974년 4월 공사에 착수해 1981년 5월17일 종합사무동과 함께 준공식이 거행되었다.
53m의 권양기를 비롯해 모든 설비는 중앙 집중 제어시스템에 의해 관리되었다. 지금은 손바닥에 올라갈 정도로 작아졌지만 당시만 해도 컴퓨터라고 하면 커다란 방 하나는 가득 메울 만큼 덩치가 큰 물건이었다. 본관 박물관을 방문하면 이 컴퓨터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권양기는 당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뽐내던 독일의 GHH사와 AEG사가 제작했다고 한다. 권양기는 1회에 400명 씩 광원들을 갱내로 실어 날랐고 이들은 연간 50만t의 굴진 암석을 처리했다. 스위치만 누르면 금방이라도 꿈틀거릴 것 같은 조차장 시설은 한때 잡지 화보의 단골 무대였다.
폐광의 문화적 부활을 이룩한 손화순 삼탄아트마인 대표는 “정선 청정지역 해발 900고지의 삼탄아트마인은 세계 각국의 회화·조각·공예 등 10만여 점을 보유한 문화공간으로 힐링여행을 겸한 예술관광에 최적화된 곳이다. 늦여름 시원한 이곳으로 문화여행을 즐기러 많이들 찾아주시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흑멸백흥 전시는 삼탄아트마인이 주최하고 강원특별자치도·강원문화재단·정선군청·적멸보궁정암사·예술법인 (주)가이아가 후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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