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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작아지는가?” 김수희가 부른 노랫말은 트럼프와 푸틴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79)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유독 블라디미르 푸틴(73) 러시아 대통령 앞에선 약한 모습을 보였다. 어떤 사람은 트럼프가 푸틴에게 약점을 잡혔다고 말한다. 러시아가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를 당선시키기 위해 여론 공작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대선 개입이란 결론을 내렸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러시아에 경고했다.
시작부터 밀리진 않았다. 트럼프는 광복절이었던 15일 알래스카 엘먼도프-리처드슨 기지에서 푸틴을 만났다. 푸틴과 트럼프 머리 위로는 미국 전략 폭격기 B-2 스텔스 폭격기가 F-35 전투기와 함께 날았다. 굉음을 들은 푸틴이 B-2 폭격기를 바라보자 트럼프는 만족한듯 박수를 쳤다. 푸틴이 의장대 사열을 받을 때 주위엔 세계 최강 스텔스 전투기 F-22가 있었다. 하지만 푸틴은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푸틴은 회담 내내 여유가 넘쳤지만 트럼프는 긴장한 표정을 드러냈다. 푸틴은 휴전을 요청한 트럼프에게 오히려 종전을 요구했다.
휴전과 종전은 어떻게 다를까? 우크라이나는 휴전을 바라지만 러시아는 평화협정(종전)을 바란다. 러시아는 현재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점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남쪽에 있는 자포리아주와 헤르손주까지 점령하고 있으므로 이대로 전쟁이 끝나야 국제적으로 영토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계산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해서는 안 된다고 요구했다. 영토를 약 20%나 빼앗긴 우크라이나는 쉽사리 전쟁을 끝낼 수 없다. 농업국가인 우크라이나에 돈바스 지역은 공업지역이자 희토류 등 자원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푸틴을 만나기에 앞서 트럼프는 러시아를 압박할 수단을 가졌다. 미국 공화당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과 민주당 리처드 블루멘털 상원의원이 공동발의한 러시아 제재 법안은 러시아산 석유와 우라늄을 수입하는 모든 국가에 최소 500%의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을 담았다. 중국과 인도에 석유를 팔아서 전쟁자금을 마련하는 러시아의 돈줄을 끊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게다가 미국이 최첨단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면 전쟁의 판도가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그렇지만 트럼프는 러시아를 압박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러시아로 돌아간 푸틴은 당당했다. 그는 “아주 정당한 협상을 했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7)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인 24일 푸틴에게 정상회담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강력한 안정을 보장받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트럼프와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NATO에 가입시킬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미국은 아직까지 어떻게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할지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러시아가 차지한 크림반도는 우크라이나 동남부에 있다. 얼지 않는 항구 세바스토폴에는 러시아 흑해 함대가 주둔한다. 미국은 이미 흑해 함대가 머무는 크림반도를 러시아가 갖는 것에 대해서 동의했다고 알려졌다.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 등 흑해 연안까지 가지면 우크라이나는 자원과 산업을 송두리째 뺏기는 셈이다. 이런 까닭에 우크라이나는 종전보다 휴전을 통해서 영토를 되찾으려 한다.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 남하를 막으려고 오스만투르크와 함께 크림전쟁(1853~1856)을 벌였던 것을 생각하면 미국은 러시아에 너무 쉽게 부동항 세바스토폴을 넘긴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수 있다.
푸틴에 유독 약한 트럼프는 바보일까? 트럼프는 세바스토폴보다 잔게주르 회랑을 주목한다. 잔게주르 회랑은 이란 북부와 연결된 아르메니아 남부를 통과해서 아제르바이잔 영토인 나히체반으로 이어지는 43㎞짜리 가느다란 길이다. 미국은 최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평화협정을 이끌면서 잔게주르 회랑을 99년 동안 운영하기로 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측근은 최근 미국의 회랑 건설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미국으로선 이란을 북쪽에서 압박하면서 러시아 남쪽을 견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를 얻은 셈이다.
장사꾼 트럼프는 명분보다 실리를 챙긴다. 의리보다 계산을 따지는 트럼프가 크림반도처럼 한국을 버릴지도 모른다. 이재명(61) 대통령이 26일 새벽(한국시간)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서 한반도 평화를 언급하며 김정일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달라고 부탁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에 트럼프 월드도 하나 지어서 저도 거기서 골프도 칠 수 있게 해 달라”는 말로 트럼프를 웃게 만들었다. 트럼프와 정상회담에서 다퉜던 젤렌스키와 달리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께서 피스메이커를 하시면 저는 페이스메이커로 열심히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처럼 노벨 평화상을 받길 바라는 트럼프의 마음에 쏙 들 만한 말이었다.
오랜 평화 끝에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꿈틀거린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거센 가운데 북쪽엔 핵으로 위협하는 북한이 있고 동남쪽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일본이 있다. 그 어느 때보다 실리 외교가 필요하다. 트럼프는 언제 마음을 바꿀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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