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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사태는 단순한 인사 스캔들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시대착오적 세계관의 충돌이었다.”
정치학자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신간 『조국 사태로 본 586 정치인의 세계관―유교적 습속과 행태』(푸른길)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번 책은 2019년 ‘조국 사태’가 단순한 인사 청문회 논란을 넘어, 한국 민주주의가 맞닥뜨린 구조적 위기의 단면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채 교수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보여준 도덕적 훈계와 진영 논리, 그리고 586 정치인들이 공유해온 내로남불식 행태를 ‘유교적 습속’이라는 개념으로 규정한다. 즉, 자신을 성인군자처럼 도덕적 주체로 세우고, 상대를 소인배 혹은 ‘거악(巨惡)’으로 규정하는 이항 대립적 사고가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과 충돌한다는 것이다.
책은 송시열의 소중화론과 위정척사론, 80년대 운동권 세계관, 그리고 조국 사태에 이르기까지 이어지는 유교적 선악 이분법의 계보를 추적한다. 나아가 이 전근대적 세계관이 오늘날에도 좌우 진영 논리를 강화하며 한국 정치를 분열시키고 있다고 비판한다. 동시에 채 교수는 대안으로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과 청교도적 공화주의 전통을 제시한다.
그는 “586 정치인들이 교화와 계몽의 주체가 아니라 시민과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공화주의적 시민 덕성을 회복해야 민주주의가 정상화된다”고 강조한다.
최근 광복절 사면 후 정치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는 조국 조국혁신당 혁신정책연구원장의 행보 논란에 대해 채 교수는 스카이데일리를 만나 “민주주의는 적을 만드는 방식으로는 결코 성장할 수 없다”며 “공정·책임·시민적 연대의 새로운 공화주의적 가치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악 이분법의 정치, 민주주의와 충돌한다”
채 교수는 인터뷰 서두에서 “조국 사태를 단순히 개인의 도덕성 논란이나 임명 과정의 잡음으로 축소하는 것은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조 원장이 보여준 정치 행위는 항상 상대를 ‘거악(巨惡)’으로 규정하고 자신을 ‘정의의 사도’로 포장하는 방식이었다. “선악의 이분법으로 스스로는 면죄부를 받고, 상대는 악당으로 만들어 적대와 혐오를 조장하는 방식은 민주주의 규범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이 채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이를 ‘위정척사적 세계관’으로 설명한다. 원래 위정척사는 바른 것을 지키고 사악한 것을 배척한다는 의미이지만, 현실 정치에서 그것은 곧 도덕적 결백을 스스로 전제한 채 타인을 무조건 악으로 규정하는 흑백논리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상대를 인정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공공선을 추구하는 체제이다. 그러나 조국 사태에서 드러난 태도는 상대 진영을 적대시하고, 국민의 분노를 선악의 구도로 흡수해 정치적 자양분으로 바꾸는 행태였다.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결국 민주주의는 파괴된다.”
채 교수는 조국 사태를 586 운동권 세력의 집단적 인식 구조가 응축된 사건으로 봤다. 그는 “조국 개인은 586의 한 사람일 뿐이지만, 그가 보여준 태도와 그를 옹호하는 집단의 언행은 운동권 세계관의 집약판이었다. 선악 이분법, 위정척사적 사고, 상대를 혐오하는 태도는 모두 이 세대가 공유하는 정치 문법이다”라고 말했다.
채 교수는 이러한 정치 문법의 뿌리를 유교적·동양적 세계관에서 찾는다. 유교는 성인·군자와 소인배를 나누고, 불교와 도교는 수행을 통해 누구나 신선·부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런 “노력하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전통적 사고가 동양 사회에서는 곧 선악을 나눌 권한을 인간이 가질 수 있다는 논리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반면 서구 민주주의는 청교도적 전통과 막스 베버가 말한 근대적 노동 윤리·세속화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신과 분리되어야 하고, 선악의 구분은 인간이 아닌 신의 영역이라는 겸손이 민주주의 규범의 토대가 됐다. 채 교수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유교적·샤머니즘적 세계관에 갇혀 있기 때문에 진영 논리와 선악 구도가 쉽게 강화된다”고 지적했다.
“조국 사태는 민주주의의 공공성을 무너뜨렸다”
2019년 자녀 입시 비리로 시작한 조국 사태가 한국 민주주의에 남긴 교훈을 묻자 채 교수는 분명하게 말했다. 그는 “국민의 상식은 ‘공정’과 ‘책임’을 요구했는데, 정치권은 이를 진영 논리에 따라 소비했다. 국민의 분노는 특권과 불공정에 대한 것이었지만, 그것이 제대로 수용되지 않고 왜곡되면서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손상됐다”라고 말했다.
채 교수는 조국 사태를 한국 민주주의의 공공성과 상식이 무너진 순간으로 규정한다. 동시에 “불공정과 특권에 분노한 국민 정서가 어떻게 표출되고, 정치적으로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보여준 사건”이라며 이 교훈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 교수의 메시지는 단호하다. “민주주의는 특정 세력의 도덕적 우월성으로 지탱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공적 책임의 이행 위에서만 작동한다.” 그는 민주주의자가 지녀야 할 덕성으로 “상대를 적이 아니라 다른 의견을 가진 시민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꼽았다. 그러나 조국 전 장관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윤석열·김건희를 계속 공격하고, 여전히 국민의힘을 ‘악’으로 규정하며 대립 구도를 강화하는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며 씁쓸해했다.
그는 또 “이런 행태는 단지 조국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586 정치인 전반이 공유하는 운동권 세계관의 잔재”라며 “민주주의에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 습속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앞으로 한국 정치의 과제이다”라고 덧붙였다.
“새로운 공화주의적 가치로 전환해야”
끝으로 채 교수는 이번 저서의 궁극적 메시지를 이렇게 요약했다.
“조국 사태를 단순한 정치 스캔들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586식 세계관과 유교적 습속을 성찰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 시대착오적 세계관은 21세기 민주공화국의 정신과 충돌하고 있다. 앞으로는 공화주의적 가치, 곧 공정성과 책임, 시민적 연대에 기반한 새로운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그는 “민주주의의 위기는 곧 우리 삶의 위기이다”라며 “이제 선악의 흑백논리를 넘어, 차이를 인정하고 공공선을 합의하는 문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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