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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세포외기질, 콜라겐…. 과학계와 바이오산업이 탐낼 만한 보물이 지방 속에 들어 있다. 그런데 이 보물은 매년 수조 원의 가치를 잃은 채 소각장으로 향한다. 이유는 단 하나, 법에 명시된 금지 조항 때문이다.
최근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이 인체유래 지방의 재활용을 허용하는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는 태반만 예외적으로 재활용이 가능하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지방도 의료·바이오 목적으로 쓸 수 있게 된다. 한국은 세계에서 지방흡입술이 가장 많이 시행되는 나라다.
매년 20만㎏의 폐지방이 버려진다. 1㎏당 최대 2억 원의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데, 우리는 이 금보다 비싼 자원을 죄다 태우고 있는 셈이다. 만약 개정안이 통과돼 버려지는 지방이 재활용된다면 인공피부, 창상(創傷) 연고, 조직 수복제, 필러, 나아가 각종 치료제에 이르기까지 무궁한 가능성을 갖게 된다.
문제는 이 규제를 풀겠다고 정부가 약속한 것이 2018년인데 벌써 만 6년이 흘렀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했지만 요즘은 1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그런데 무려 5년하고 1년이 넘도록 관료들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면서 무엇을 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약속은 또 왜 한 것일까.
그 약속을 믿고 연구하고 투자한 사업가들은? 동네 이장도 주민들과 약속하고 지키지 않으면 신뢰가 바닥나고 그 평판이 휴지 조각이 된다. 심지어 주변 사람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이 말은 즉, 누군가는 외교를 판단할 때 국내 사정을 볼 것이고 투자를 할 때 정부의 판단력을 살필 것이라는 얘기다.
표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정당에서 내뱉는 말, 기득권을 잡기 위한 욕망에 휩싸여 내지른 말이 국가의 이미지를 흐리고 산업의 발전을 더디게 만든다는 것을 관료들은 매 순간 혀끝을 내밀 때마다 생각해야 한다.
환경부는 “복지부가 먼저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하고 복지부는 “법 개정안이 나오면 논의하겠다”고 한다. 바이오 기업들은 정부 발표만 믿고 투자했지만 ‘연구 목적 외 사용 불가’라는 현행 규제 앞에서 좌절을 거듭하고 있다. ‘규제 완화’가 매년 정책 브리핑에 등장했지만 실상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으면서 ‘제자리걸음을 하는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생각할 것이다. 지방을 되살려 쓴다는 것이 어쩌면 기이하게 느껴질 수 있다. 누군가에겐 혐오의 경계를 넘는 일일 수도 있다. 또 누군가는 막연히 버려진 지방에 감춰진 감염 위험성이나 돌연변이, 미처 걸러지지 않은 생물학적 잔재가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의료는 늘 그런 윤리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어 왔다. 피를 나눈다는 건 오래전부터 금기로 여겨졌지만 지금은 수혈이 일상이고 죽은 이의 장기를 이식받는 일도 생명을 살리는 의학의 일부가 됐다. 무조건적 금지는 과학의 미래를 폐기하는 또 다른 형태의 낭비라고 본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문제는 기술의 문제도, 윤리의 문제도 아닌 행정의 늪이라고 본다. 과학이 가능성을 만들었고 산업은 준비를 마쳤다. 국회도 법안을 냈는데 행정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정책 부재가 결국 산업 부재로 이어지는 길목에서 버려지는 것은 지방만이 아닐 것이다. 기회와 신뢰 또한 버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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